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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역사

봉건제(Feudalism)

봉건제(Feudalism) 혹은 봉건제도 등으로 불리우는 봉건제는 옛 고대 중국 주나라로부터 기원했다. 그러나 현재는 주로 서양, 그것도 중세 유럽에서 흔히 성행한 바, 서양에서의 Feudalism을 일컫는 말로 여겨지고 있다. 봉건제의 최초 도입은 기본적으로 원시적인 공동체가 없어지면서 성립되어졌다고 보이는데 쉽게 말해 경제 사회구성체정도로 보면된다. 봉건제는 흔히 봉주와 봉신 간 주인과 그를 따른 종의 계약으로 신분관계를 형성하며 그에 따라 주는 일정한 봉토를 하사하고 종은 주인을 따르며 세금을 낸다. 또 계급적으로 살펴본다면, 주인의 신분을 가지는 봉건 영주, 그 아래 귀족이라든지 고위 템플러 승려가 존재 했고 이를 이루는 기반인 농노가 있었다. 이는 중세유럽에 가장 활발해 주로 8세기 9세기, 13세기까지 해당했다. 이는 일종의 생산체제라고도 볼 수 있는데 생산직에 해당하는 농노가 부역지대를 일종의 생산물 지반, 화폐지대로 바꿔놓게되면서 농노의 지위가 어느정도 높아짐에 따라 주인에 해당하는 영주와 하역중인 농노간의 관계 즉 지배와 규제가 심해져 억압받게 되었는데, 이를 통해 시민혁명이 일어나는데 일조했다고도 보여진다. 또한 이를 국가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국가 통치의 방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위계질서를 통해 나타나는 양상은 대영주는 그 아래 소영주를 종속관계에 이르게 했고 신분의 위계로 하여금 신분의 상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통치에 있어 주요한 권리 행사중 하나인 참정권 즉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로 바라볼 때, 피지배계급층에 해당하는 농노 계급은 이러한 기본 권리 행사를 박탈당했다. 생산체계가 제대로 발전되지 않은 이 시대에서는 도시 주민의 대부분이 수공업을 담당하며 지내왔다. 앞서 언급했듯 이러한 생산의 중요성과 힘이 커져감에 따라 생산직에 해당하는 피지배계급층의 권리 또한 높아지기 시작했다. 노동력과 생산력은 모두 농노에 의해서 산출되었으므로 이는 착취의 특징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노동지대, 생산물지대, 화폐지대 등으로 나타나는 형태는 농노의 잉여생산물마저 앗아갔으며 심지어는 생활을 유지하는데 있어 필요한 생산물마저도 앗아갔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따라 봉건 경제는 낮은 수준에 위치하였다고 할 수 있다. 국가적으로는 아직까지 왕정시대에 머물러 있었고 종교가 곳곳에 퍼져 있어 당시의 시대상을 살펴보면 인간은 신에 의해 흘러간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생활 전반 곳곳에 깊숙히 침투한 종교적인 사상은 사회 사상적인 측면에서도 영향을 뻗쳐 나갔는데 대부분의 사상적 교리가 종교의 형태를 기반으로 점차 발전해 나갔다. 이는 농노의 혁명적인 부분 즉, 반란에 대해서도 종교적인 가치관이 내걸어졌으며, 봉건제의 치명적인 오류를 역설해가며 붕괴를 시키는데 일조했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이게도 더 차갑고, 냉철한 시대를 불어오는 단초가 되었다. 바로 자본에 의해 돌아가는 자본주의 시대의 도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