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를 다시 생각하다 -
지금까지 살펴본 보이지 않는 손으로 시장의 자생적 질서와 분업화 노동의 중요성을 설파한 국부론으로 모두가 잘사는 세상을 꿈꾸던 애덤스미스와, 노동가치를 중시하며 심화되는 빈부격차로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켜 자본주의 체제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칼 마르크스의 생각도 틀렸다. 또한 정부의 개입을 중요시한 케인즈와 시장의 중요성을 주장했던 하이에크도 더 이상 우리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들 모두가 수 십년 동안 여러 방안을 내놓았지만 우리 자본주의는 여전히 무수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250여 년의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급속한 발전과 번영을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그로 인해 더욱 행복해졌을까? 2011년 미국 금융자본의 심장인 뉴욕의 월 가 한복판에 1천명의 시위대가 모여들어 ‘월가를 점령하라’라는 구호아래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현대 자본주의에 새로이 떠오른 금융자본주의에 맞서 심화된 빈부격차와 갈등을 빚어내는 양극화에 따른 시위였다. 그들은 하나 같이 말한다. 자신들이 살고 싶은 세상은 이러한 세상이 아니라고. 실업, 빈부격차, 불평등 등 모두 자본주의의 탄생부터 비롯된 아니 이미 예견된 문제들이었고 많은 학자들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방안을 내놓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자본주의 시대가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이러한 자본주의를 실패한 체제로 다시 버리고 다른 것을 찾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지금의 자본주의를 고쳐 쓸 수밖에 없다. 이제까지의 많은 사상가들이 제시했던 자본주의 해법이 모두 실패했다면, 문제의 원인에 대해 다시 한번 살펴보고 일회성이 아닌 근본적인 문제점을 찾아내는 것이 우선이다. 정부와 시장이 아닌 새로운 대체자를 말이다.
케인즈와 하이에크가 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문제는 ‘소득의 불균형’에 관한 문제였다. 소득의 불균형에 따른 불평등을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의 문제는 현재 우리 시대 가장 큰 문제로 자리 잡았다. 분명 국민 소득은 증가하는데 반해 국민의 소득 대부분은 상위 1%에게 돌아가고 나머지 99%는 제자리 걸음을 걷고 있다. 이러한 소득 불균형은 앞으로도 더욱 심해질 것이고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낙오자들 또한 더욱 많이 생겨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있어 수입의 증대와 부의 창출을 가져다주는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많은 경제 석학들은 자본주의를 버려서는 안되고 그것에 문제점을 찾고 수정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했던 시장도 국가도 아닌 새로운 대체자는 누가 되어야 할까? 바로 ‘국민’이다. 국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로 양극화. 불평등, 빈부격차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이 ‘복지자본주의’가 필요하다.
혹자는 ‘복지’를 중시한 사회에서는 경제 성장에 발목이 잡힐 것이라 분석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 소수의 고소득 계층과 다수의 저소득 계층이라면 당연히 다수의 소비가 많을 것이고 수요가 있어야 공급도 많듯, 이러한 다수를 위한 방안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복지는 초기에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으나, 길게 보자면 더 큰 성장을 이룩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퍼주기식 복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의 더욱 생산적인 복지 즉,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건강한 복지를 말한다.
어느 누구도 자본주의의 성공과 인류에게 가져다 준 번영에 대하여는 반문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1%를 위해 돌아갔다면 이제는 나머지 99%를 위해 돌아갈 때가 되었다. 소득의 불균형을 해결하고 대다수의 행복을 추구할 때, 우리 사회는 더욱 행복하고 살 맛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이제는 ‘같이 살아가는’ 자본주의를 생각해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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